"가짜 난민은 있을 수 없다. 난민 신청자와 난민 인정자로 나뉠 뿐이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저널리즘 토크쇼 J> 50회에 특별 출연해 기사 속에 '가짜 난민'을 언급한 언론 보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6월,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 땅을 밟았다. 이들의 난민 신청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거센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찬반으로 갈린 시민들은 치열하게 대립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논란의 중심에 정우성 씨가 있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 사절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는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5년째 난민 보호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번 주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는 정우성 씨를 초대해 난민 문제를 짚어본다.
'가짜 난민'은 어떻게 뉴스에 등장했나?
지난해 6월 30일 조선일보는 법무부의 난민 종합대책 발표를 전하면서 <가짜난민 잡을 난민심판원 신설…제주, 심사기간 3개월로 단축>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러면서 "최대 3~5년까지 체류할 수 있는 난민법 때문에 한국이 난민 브로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선 현재 5단계인 난민 심사 절차를 3단계로 줄이기 위해 난민심판원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2000년 초 난민이 대규모로 유입된 뉴질랜드에서도 난민심판원과 유사한 기구를 도입한 뒤 허위 난민자가 대폭 줄었다'고 했다. 난민심사 기간을 최대한 줄여 진짜 난민은 보호하되 난민을 가장한 사람은 신속히 거르겠다는 취지다"는 내용을 본문에 실었다. 서울신문은 지난해 7월 3일 서울행정법원의 강연회 소식을 전하면서 <"가짜 난민 어떻게 가리나" 난민법 공부하는 판사들>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뽑기도 했다.
J 고정패널인 팟캐스트 MC 최욱 씨는 '가짜 난민'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기사에 대해 "난민 인정이 대단한 훈장이나 감투를 주는 것처럼 기사를 쓴 것 같다" 고 지적했다.
'가짜 난민'이라는 위험한 프레임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강남대 교수도 J에 출연해 "가짜라는 호명 자체가 일종의 프레임이다. 난민 심사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권한을 가지고 당락을 결정하겠다'는 충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거기에 가짜 난민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진짜는 따로 있다는 강한 프레임이 작동한다. '우리가 하나가 돼 가짜와 진짜를 가리자'는 언급은 상당히 위험한 프레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노숙, 범죄' 자극적 단어와 '난민' 연결짓기
지난해 보도된 예멘 난민 관련 뉴스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그중 지난해 7월 20일 자 중앙일보의 1면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제주 '예멘 난민' 길에 나앉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중앙일보 홈페이지에는 〔단독〕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여서 보도됐다. 본문에는 "한국 사회에 본격적인 난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제주 체류 예멘인이 노숙을 한다는 신고가 늘고 있다. 19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노숙을 시도한 예멘인은 지난달 8일 이후 최근까지 40명에 달한다. 제주에서 취업하지 못했거나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예멘인들이 길거리로 나오고 있다. 난민 심사가 지체되고 제주도 밖 이동 제한 조치가 장기화하면 노숙 시도가 더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는 내용을 실었다.
특히 이 기사에서 사용한 사진이 문제가 됐다. 기사 중 등장하는 "노숙 시도"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보도 이틀 전(2018.7.18.)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상담회를 찾은 예멘 난민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배치했다.
J 고정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이에 대해 "만드는 기사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취재된 내용에 적합한 영상이 필요한데 없으니까, 그럴듯한 영상으로 대체하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에 가까운 사례다. 마치 엄청나게 많은 난민이 몰려와서 우리의 거리를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식의 인상을 주기에 뻔한 기사를 썼다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행위이다"라고 비평했다.
지난해 6월 23일 조선일보는 <난민 신청 상반기에만 7,737명…1년 새 2배 급증> 기사를 통해 "예멘 난민 신청자 대부분은 제주도를 떠나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올해 총 1만 8000명이 난민 신청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앞으로 3년 안에 누적 난민 신청자가 12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서는 난민이 급속히 늘어나며 범죄도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내보다 앞서 난민을 수용한 유럽은 난민 범죄로 홍역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는 "범죄율, 홍역, 범죄율, 난민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만 나열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기사이다. 난민과 관련한 대표적인 오해를 들여다보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난민 지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로 왔을 것이라는 얘기다. 난민 심사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로 이뤄지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범죄자, 불법 이주 노동자를 난민이란 단어와 연결하는 것은 명백히 오해이다"라고 말했다.
정준희 교수는 "조선일보 기사는 '난민 신청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 범죄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와 그러한 우려가 혐오가 될 수 있다는 반박을 넣어 공방의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대단히 무책임한 방식으로만 구성한 기사는 아니다. 대신, 목적이 상실된 기사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예를 들면 찬반 논리가 있으니 국민적인 합의를 마련하기 위한 틀이 필요하다든지,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길을 잡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에 실패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미담', '구조적 문제'로 난민 이슈 접근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의 보도는 사뭇 달랐다. 지난해 6월 28일 자 한겨레신문의 온라인판 뉴스를 보면 <67만 원 든 지갑 되찾아준 제주 예멘 난민>이라는 기사를 통해 '전 재산의 8배에 달하는 현금이 들어있던 지갑을 예멘 난민이 경찰서에 가져다줬다.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론 분실물을 찾아주는 등 선행만 네 건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9월 5일 자 경향신문은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어 "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 명 중 2200만 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 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예멘 난민이 싫다고? 그렇다면 사우디 석유를 사서 쓰지 말자. 우리 석유 수입의 3분의 1을 줄여버리는 거다. 세상은 다 이어져 있다. 돈도 자원도 국경을 넘나든다. 그런데 사람의 이동, 도덕적 책임감의 공유만 쏙 빼놓자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다"라고 전했다.
"우리 옆 난민의 일상 조명하는 보도 필요"
정준희 교수는 "진보 언론은 기본적으로 난민 수용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미담이나 구조적 문제를 알려주는 보도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관점의 대척점에 난민을 안보의 문제로 보는 프레임이 있다. 안보는 봉쇄로 얻어진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그 바탕에 있다. 우리 사회의 빗장을 걸어 잠그면 안전할 거라는 유아적인 시각이다. 우리 사회는 봉쇄를 통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방을 통해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깨트리려면 우리 바로 옆에 존재하는 외국인이나 난민들의 모습을 알려주는 일상화 된 보도 형식이 필요하다. 반드시 미담일 필요도 없고 현실을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결국 기사 안에 난민은 없고 난민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구독자의 입장은 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가 난민 관련 보도들을 살펴보면서 이같이 말했다. 또,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논리에 대한 강조만 있을 뿐이었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들여다보면, 난민은 어떤 집단의 대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지구 상에서 가장 절대적 약자인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어떤 윤리적 연대를 펼쳐야 하는지, 개개인이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합의가 필요한 이슈이다. 우리 안에서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중요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찬성과 반대의 간극을 메우는 성숙한 논의의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방송 1년, 50회를 맞았다. 오늘 밤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특집 대담 편성으로 평소보다 20분 늦은 밤 10시 5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된다. 이번 50회는 <난민 보도, 현실 아닌 이념 프레임에 갇히다>라는 주제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 씨가 출연해 난민 문제를 짚어본다. 특히, 난민과 관련한 이슈를 우리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 들여다보고, 바람직한 보도 방향을 논의한다. 이와 함께 찬반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우리 사회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한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 팟캐스트 MC 최욱, 안톤 숄츠 독일 출신 기자, 영화평론가인 강유정 강남대 교수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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