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2020년 한국영화
감독 : 조일형
각본 : 맷 네일러
출연 : 유아인, 박신혜, 전배수, 이현욱
오혜원
저는 '살아있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 그 영화가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속편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얼핏 '부산행'의 속편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고, 배우가 교체되는데 제법 유명한 남녀 배우인 것으로 기억했거든요. 그러다 한국 좀비 영화 예고가 보이길래 속편이 이제 개봉하는군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반도'라는 영화가 따로 있고, 그보다 앞서 '새치기 개봉'을 한 영화가 '살아있다' 입니다.
원조 개봉을 앞서서 유사 짝퉁의 개봉은 원조에게 그리 반가운 사실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스탠리 큐브릭의 '스팔타카스'가 개봉할 때 짝퉁 '스팔타카스'가 개봉했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해양극 '어비스'가 사상 최고제작비를 들여서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 난데없이 같은 해 '딥식스'와 '레비아탄' 이라는 유사 소재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완전 김빠지는 일이죠. 한국영화로는 한국판 '분노의 역류'로 느껴지는 소방관 모험물 '싸이렌'과 '리베라메'가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죠. 이렇게 유사소재로 김빠지는 일은 종종 있는 경우입니다. 뭐 아주 오래전 '성춘향'과 '춘향전'이 함께 붙었던 적도 있었죠.
아무튼 '살아있다'는 한국 좀비영화인데, 이제 한국영화에서 좀비구경이 그리 신선한 분야는 아닙니다. '부산행'을 처음 보았을때는 정말 신선 그 자체였죠. 신선함을 넘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에서 좀비영화가 튀어나왔는데 본산지보다 더 재밌다니....
그 이후에 조선시대 좀비물 '창궐'이 있었고 넷플릭스에서 투자한 '킹덤'이 있었습니다. '킹덤'이 얼마나 대박을 쳤는지는 뭐 새삼스럽지 않아요. 넷플릭스라는 공간에서 한국에 투자할만 하다 라고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살아있다' 입니다. 나올만큼 나온거죠. 이런 상황이니 연상호 감독 입장에서는 좀 씁쓰레하겠습니다. 유사작품의 새치기 개봉은 무조건 악재지요. 코로나로 흥행도 확 저조해진 극장가에 유사상품이라니요.
조일형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데 저는 이제 한국 영화를 리뷰하면서 '데뷔작이다'라고 쓰는 것도 민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제가 일부러 데뷔작만 골라보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영화는 '데뷔작'이 많다는 것이고, 그건 즉 '데뷔작'이 은퇴작이거나 혹은 데뷔작 이후에 좀체로 후속작을 못 내는 경우가 많다는거죠. 그만큼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어두운 부분입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자국영화 점유율 50%를 자랑하는 보기 드문 나라가 이런 현실입니다. 직전 감상한 한국영화 '사라진 시간' '결백' '침입자'가 모두 감독의 극장용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다면 말 다했죠. 신인감독이 넘쳐나지만 5편이상 연출하는 감독은 찾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제발 향후 제가 어느날 '조일형 감독의 5번째 영화입니다'라고 쓰는 날이 왔으면 하네요.
유아인이 주인공입니다. 뭐하는 청년인지는 모르지만 월급받는 회사원은 아닙니다. 머리를 물들이고 게임이나 하고 드론에 취미가 있는 걸 보니 출근하고 잠자기 바쁜 회사원과는 거리가 멀죠. 학교운운하는 대사도 나오는데 뭐 학생이라고 하기는 늙었고. 아무튼 이 청년이 혼자 아파트에 머무는 상황에서 그 아파트 단지가 좀비떼의 소굴이 되어 버립니다. 영화에서는 전염병이라고 표현하고 전염되면 식인의 기질이 나타난다 어쩐다 전문가가 TV에 나와서 설명하지만 왜 긴 설명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좀비가 된다'라고 한마디 하면 척 알아들을 일을.
영화의 양상은 좀비 액션 이라기 보다는 '나홀로 은둔 생존기'에 가깝습니다. 물론 좀비액션이 등장합니다만 주로 유아인이 좀비의 습격을 피해 아파트 문을 굳게 잠그고 집안에서 외출도 못하고 버티는 내용입니다. 1일째, 2일째, 5일째, 15일째 뭐 그렇게 진행되지요. 박신혜는요? 네, 나옵니다. 한 30분은 더 지나서 나오지요. 유아인의 독무대에서 드디어 박신혜가 등장하지요. 둘은 마주보이는 아파트 동에 살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아파트 맞은편 동의 거리는 제법 먼 거리입니다. 대화를 할 수 없는 거리고, 물건을 던지고 받을 수도 없는 거리죠.
'첨단시대의 좀비영화'라는 묘미가 좀 있습니다. 휴대폰, SNS, 거기에 드론까지 등장하니까요. 유아인이 박신혜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물건을 주고 받을 때 드론이 역할을 합니다. 근데 좀 아쉬워요. 이왕 드론을 등장시킨 거, 아예 이걸 컨셉트로 밀고 나갔으면 어떨까 싶어요. 이게 생존기잖아요. 드론을 이용한 생존기로 쭉 끌고 나갔다면 신선했을 것 같은데 드론은 아쉽게도 적당한 시점에 퇴장합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내용이 나와요. 갑자기 두 주인공이 '창궐'의 일당백 무사 현빈으로 빙의합니다. 현빈은 조선시대 사람이고 무예를 배우던 시대이고 칼이라도 들었지. 이 둘은 뭡니까? 박신혜는 전직 경호원이나 격투기 선수였나 봐요. 그런데 유아인은? 비현실적인 내용이 나와버리면 영화가 갑자기 확 재미없어집니다. 아니 어떻게 살아날지 아슬아슬하고 기발한 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싸움잘해서 살아난다.... 이것처럼 재미없는게 어디 있어요? 지들이 삼국지의 조자룡도 아니고 좀비가 장악한 아파트 단지 마당을 치고 달리다니... 그럼 여기 등장한 좀비는 엄청 약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괴물이 약골이면 재미가 없죠.
뭐 여기까진 그냥 이해해 주겠습니다. 그런데 이후 8층의 중년남 가족 이야기는 그냥.... 이거 허무개그인가요? 황당함을 넘어서 허망함이 느껴지더군요. 아니 뭐 약을 먹인건지 수면제를 먹인건지 왜 멀쩡하던 두 사람이... 그런데 쓰러지려면 확실히 쓰러져야지 왜 또 멀쩡해지는지... 좀비가 덤벼도 막아낼 정도로. 이 에피소드는 그냥 없는걸로 하는게 나을겁니다. 여기서 마이너스 30점 입니다. 뭐 몇점 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점수가 깎이다니요.
100분도 안되는 짧은 영화에서 이렇게 낭비되는 내용을 넣을 정도니 100분 남짓 끌고가기도 벅찼나봐요. 보름넘게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한 유아인은 피골이 상접하고 뼈와 가죽만 남아야 정상인데 힘이 넘쳐나 보입니다. 그리고 무전기 대화는 아무리 바보라도 서로 같이 누르면 안되기 때문에 말 끝났다는 신호로 '오버'를 해줘야 합니다. 영어라서 싫으면 '이상' 이렇게 해야 상대방이 끝난줄 알고 말하죠. 이런 부분도 아쉽죠.
비교적 최근에 '좀비랜드' 속편이 개봉했고 제법 재밌다보니 이제 한국좀비든 뭐든 좀비영화는 제대로 못 만들면 역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아마 연상호 감독이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릴 것 같습니다. '새치기 작품 치고는 허접하군'
영화 보러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살아남고 탈출할까가 무척 궁금했고 그 부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갔는데 싸움잘하고 잘 싸워서 살아남았다..... 이건 뭐....자전거 하나로 수십명 좀비와 힘대결에서 밀리지 않는 유아인... 그대는 진정 '스트롱 맨'~
어차피 빈 디젤이나 드웨인 존슨 같은 힘 못써서 숨이 차오르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이상 액션은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정도껏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점수깎이는 부분이 계속 터져나오는지.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그냥 한 번 더 개그인걸까요? 저는 위에서 내려오는 구조헬기는 봤어도 밑에서 솟구치는 헬기는... 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더 말해 뭐합니까?
평점 : ★★ (4개 만점)
ps1 : 좀비는 물면 물린사람도 좀비가 되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2명이 4명되고 4명이 8명되고, 배수의 법칙을 알면 이해할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초등생 '산수'조차 거꾸로 나가 봐요. 20일이 지났는데 좀비가 된 사람 숫자가.....
ps2 : 코로나 사태 이후 개봉 첫날 20만명을 넘어선 최초의 영화입니다. 이제 극장가가 슬슬 살아날것 같습니다. 개봉 첫날에 이미 일주일간 용을 쓴 '사라진 시간'의 누적 관객수를 가볍게 넘어섰으니까요. 유아인, 박신혜를 캐스팅한 보람이 있네요. 개봉 첫주는 배우빨이 통하지만 둘째주 부터는 영화의 실력이 가늠합니다. 새삼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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